목록 | 윗글 | 아래글
제목 [이서울포스트인터뷰]칭기즈칸의 후예, 재한 몽골 인들을 섬기는 나섬공동체 유해근 목사
작성일 2014-05-23 13:35:09 조회 2722
발행인 가재모, www.eseoulpost.net jaemokah@naver.com
칭기즈칸의 후예, 재한 몽골 인들을 섬기는 나섬공동체 유해근 목사

나섬공동체를 이끄는 유해근 목사는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정착되기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초에 외국인노동자 사역을 개척한 ‘다문화사역 1세대’ 목회자다.

유 목사는 1992년 나그네를 섬긴다는 일념으로 구로구 구로동에 나섬공동체를 설립하여 외국인 근로자를 섬기기 시작했다.

유 목사는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급 땅에서 나그네이었음이니라.“(출애굽기 22장 21절)는 성경 말씀이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는 외국인 150만명 시대, 다문화 시대가 본격 도래했다.

유목사는 다문화 사역 초기, 열악한 환경에서 구로동 외국인 근로자 복음사역에 불철주야로 몰두, 당시 과로로 인한 육체적 피로, 과도한 스트레스에 영양 실조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결국 실명까지 당했다.

그러나 유목사는 참담한 비운과 불행과 좌절 속에서도 한국 내의 몽골 근로자에 대한 특별한 사랑의 열정과 외국 근로자 선교의 원대한 비전과 꿈을 무서운 집념과 사명감으로 하나 하나 성취해 나갔다.

유목사는 나섬공동체 서울외국인 선교회 설립, 몽골 울란바토르 문화진흥원 설립, 재한몽골 외국인학교 개설 및 몽골 외국인 학교 신축, 다문화사역연구소 및 다문화 선교학교, 다문화교실, 뉴라이프미션 동대문선교회 설립 등 온갖 역경과 힘들고 벅찬 과정 속에서도 거창한 나섬공동체 사역 프로젝트를 묵묵히 해낸 것이다.

[대몽골 칭기즈칸과 몽골의 약황]

몽골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대몽골 제국을 건설한 불세출의 영웅 칭기즈칸을 배출한 나라다. '칭기즈'는 '절대적인 힘'을 말하고 '칸'은 '군주'를 의미한다. 칭기즈칸은 몽골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뒤, 중국 정복을 단행, 만리장성을 넘어 황하 이북을 수중에 넣었다.1215년에는 금나라 수도 북경을 함락시켰다.

칭기즈칸은 중국에 이어서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호령하던 호라즘의 지배자인 투르크 족술탄 무함마드 2세가 자신이 보낸 사신을 죽이자 원정길에 나서 1220년 무함마드 2세를 제압, 호라즘을 수중에 넣었다.

이후 칭기즈칸은 중앙아시아 · 페르시아 · 카프카스(코카사스) · 러시아 · 크림 반도 · 볼가 강 유역의 동유럽까지 진출, 몽골을 통일한 지 약 20년 만에 유라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칭기즈칸의 사후에 손자인 쿠빌라이는 몽골에는 전통 도시 카라코룸을 두고, 제국의 근거지를 중국 영내로 옮겼다. 수도는 금의 수도였던 대도 북경으로 옮겨졌고, 1271년에는 국호를 '원(元)'으로 칭했다.

쿠빌라이는 남송 정벌의 대장정이 다시 결행되어 1279년에 남송을 멸망시킴으로써, 몽골족은 중국인을 송두리째 정복한 최초의 민족이 되었다.

원나라가 명나라에 망하고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한 이후 몽골은 청나라의 지배를 받아왔다.

몽골은 1911년 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1921년 7월 11일 소련군의 도움으로 독립을 하게 되었고, 1924년 11월 26일에 몽골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후 몽골은 1988년 12월 인민공화국에서 자유 시장경제로의 개혁 및 민주화로 체제변경을 추진, 1992.1월에 신헌법을 제정하여 사회주의에서 탈피했다.

이어서 몽골은 2000년 12월 헌법을 개정을 통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에게 이양하는 2원집정 내각제로 바꿨다.

현재의 몽골은 광활한 대지, 세계 10위의 무궁 무진한 자원 부국, 무한한 발전 잠재력이 있는 나라다.

몽골은 북으로는 러시아와 남으로는 중국을 사이에 둔 몽골은 156.7만㎢, 한반도의 7.4배이고 남한의 16배인 대국이지만 인구는 겨우 290만 명이다.

수도인 울란바타르 (Ulaanbaatar)는 인구 124만, 면적 서울의 2.2배다.

종교는 라마교(90%), 이슬람교(5%)이며 기후는 건조하고 한냉대로 연평균 -2.9℃다.

지형은 평균해발 1,600m, 국토의 40%가 사막이며 10%가 산림지역이다.

[한국-몽골간 교류와 협력]

한국과 몽골은 역사적, 문화적, 인류학적, 언어학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매우 가깝고 밀접한 관계 속에 이어져 왔다. 고려조 충렬왕부터 공민왕때 까지 100년간 원의 부마국이 되면서 상중류 계급 사회에서 풍미했던 몽골풍이 많이 남아 있다.

여자 족두리(族頭里), 옷고름에 차는 장도(粧刀), 신부의 연지, 여자 귀를 뚫고 다는 귀고리, 장사치 등 어미에 붙이는 치(赤), 왕의 진지상인 수라, 여자들 머리 땋는 풍속 등이 유풍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또한 몽골반점, 우랄알타이어계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 외에도 다양한 문화적 공통점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은 민주국가로 전환한 몽골과 1990년 3월 공식 외교를 수립하였으며, 같은 해 6월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한국대사관을 개설했고, 이듬해 2월에 주한 몽골대사관을 서울 한남동에 개설하였다.

1991년 오치르바트 몽골대통령의 방한을 시작으로,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몽, 2001년 바가반디 몽골대통령 방한, 2006년 노무현 대통령 방몽, 2007년 엥흐바야르 대통령의 방한, 2011년 이명박 대통령 방몽 등 양국 수반의 교류가 있어왔다.

지금 몽골은 한국과 협력관계를 중요한 외교적 목표로 설정하였고, 한국의 경제발전을 몽골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고 있다.

한-몽 양꾸의 교역은 2012년 4.92억불(수출 4.8억불, 수입 12백만불)로써 한국은 몽골의 제5위 교역상대국이다.

한국의 대 몽골투자(2012년말 누계)는 총 2.9억불, 무상원조(2013년말 누계) 총 1.34억불, EDCF지원(2013년말 누계)은 총 1.15억불에 달한다.

양국간의 인적교류(2013년)는 방한 65,446명, 방몽 44,615명이며 체한 몽골인은 등록 기준 24,175명이나 불법체류자를 포함하면 4만명에 육박한다.
체몽 한국인은 2,500여명이다.

또한 한반도의 안정은 곧 몽골의 안보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대북평화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 또한 동북아 국가로서 몽골의 정치적인 중요성과 협력 잠재력이 크다는 점을 중시하여 몽골의 개혁과 개방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유무상의 경제 원조를 매년 제공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한국은 몽골이 세계 4대 에너지 보유국이라는 점과 몽골 경제 발전에 참여할 인적, 기술적 자원의 수출시장이라는 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한국과 몽골은 경제, 외교, 문화, 사회 등 여러 방면에서 점점 더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 몽골의 풍부한 자원과 한국의 선진기술의 성공적인 결합을 위하여, 양국 관계는 점점 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문화 사역의 나섬공동체 유해근 목사]

나섬공동체를 이끄는 유해근 목사는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정착되기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초에 외국인노동자 사역을 개척한 ‘다문화사역 1세대’ 목회자다.
유해근 목사는 1990년대 초 구로공단의 외국인노동자들과 몸을 부대끼며 이주민사역을 시작했다.

유 목사는 국내 ‘최초’의 이주민선교단체인 나섬공동체를 설립해 20여 년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로부터 20년, 그가 홀로 고단한 사역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한국은 이주민의 수가 150만에 육박하는 다문화사회로 급속하게 변화했다.

이에 유해근 목사는 자신의 20년 사역 노하우를 한국교회에 모두 내놓겠다는 각오로, 지난해 말 ‘한국다문화사역연구소’를 설립했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 ‘다문화선교학교’다.

유 목사는 “사회는 급속도로 다문화사회화 되고 있고 복지와 법제도 상황도 나아지고 있는데, 정작 교회의 대응 속도는 너무나 느리다”며 “아직도 다문화사역에 별 관심이 없는 목회자와 교회들이 많다. 한국교회 다문화사역은 현재 굉장히 미약한 수준의 초보적인 단계”라고 지적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도시빈민 지역이나 결혼이주여성들이 많은 농어촌 지역 목회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다는 이야기다.
<유해근 목사의 한국다문화연구소>
유해근 목사가 설립한 한국다문화 사역연구소는 거창하게 현판을 달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여타 학문연구소처럼 신학을 공부하는 개념도 아니다.

20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이주민사역 현장을 지키면서 쌓아 온 경험과 노하우를 전부 공개하고, 다문화사역을 하고 싶어하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컨설팅을 해주려는 취지에서 설립되었다.

유 목사는 다문화사역자들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정보 수집과 제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다문화사역 전략을 발전시키고, 이에 대한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역자들의 역량 결집이 우선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다문화사역을 활성화시킬 방안으로 개강한 ‘다문화선교학교’는 한국다문화사역연구소가 진행하는 첫 번째 프로젝트로, 다문화사역의 모든 경험과 현장을 배울 수 있는 장(場)이 될 전망이다.

다문화선교학교는 7주간의 강의와 각 나라 이주민 신학생의 사례 발표 및 현장 탐방 등으로 진행되며, 평신도와 목회자 모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강좌 수료 시 현장에서 이주자 및 다문화 사역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목회 컨설팅 및 인턴십을 제공한다.

유 목사는 지역의 외국인 현황을 파악하는 작업부터 외국인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외국인의 다양한 부류와 국적에 맞는 접근 방법 등 디테일한 전략들을 목회 컨설팅을 통해 일대일로 전수해 주겠다고 말했다.

유목사는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해외 선교에 있어서 ‘땅끝’의 개념을 바꿀 때가 됐다고 주창한다. 먼 나라가 아닌, 우리가 서 있는 바로 한국, 바로 이곳이 외국인들에게는 ‘땅끝’이라고 강조한다.
<한국교회의 선교 패러다임이 바꿔야>

유해근 목사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150여 만 명의 외국인근로자들은 하나님께서 한국에 보내주신 귀한 선교 자원"이라며,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본국에 역 파송하여 그들 국가의 선교사로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문화사회에 직면한 한국교회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다문화사역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유 목사는 다문화사역을 통해 한국교회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고 확신했다.

경제 위기가 심화될 때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계층은 사회적 약자들은 소위 극빈계층이다.

극빈층 외에 어려운 이들이 바로 외국인근로자들이다.

따라서 유목사는 한국교회가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다문화사역은 선교적 열정만으로 달려들어선 안 되는, 지난한 인내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과 헌신을 각오해야 한다고 갈파했다.

[나섬공동체 서울외국인근로자 선교회]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소속 선교회로서 1996년 1월 28일 유해근 목사가 창설했다.
하나님께서 선교의 대상으로 보내주신 외국인근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주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본 선교회 창립 이후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한 상담실 및 쉼터 운영, 의료봉사, 이미용봉사 활동과 더불어 보다 구체적이고 전략적으로 외국인근로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타를 운영하게 되었다.

현재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에 의료진료를 위한 맴버쉽 카드 소지자는 2,500여명에 이르며, 연간활동인원은 10,000여명에 이른다. 매주 주일 200여명의 근로자들이 모여 국가별 공동체 모임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연중 지속적으로 소외된 이웃들인 무의탁 결식노인, 생활보호대상자를 위한 무료급식 및 경로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의 사역은 크게 ①몽골권, ②이란을 중심으로 한 무슬림권, ③필리핀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한 영어권, ④인도를 중심으로한 서남아시아권 등 ⑤조선족, 한족을 중심으로 한 중국권 등 5개 권역으로 나누어 사역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근로자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돕고자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 창립 이후 ①몽골/울란바타르 문화진흥원, ②외국인근로자 자녀교육을 위한 재한몽골학교, ③인터넷방송국 등의 협력기관들과 더불어 외국인근로자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이들을 지원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재한 몽골 외국인학교]
(1) 몽골외국인 학교 개설 및 연혁
1990년 3월 한국과 몽골의 수교가 이루어진 후 양국 수반의 교류가 이어지면서 몽골인 근로자들이 대거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유목민의 특성상 대다수의 몽골근로자들이 아이들과 가족을 동반하여 국내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 당시 한국의 교육법에는 외국인자녀가 국내 일반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으므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몽골아동들을 위해 유해근 목사가 주축이 되어 뜻있는 한국인들이 1999년 학교의 문을 열게 되었다.

개교 당시 8명의 아이들로 시작된 본교는 2013년 현재 1~9학까지 85명의 몽골 아동이 재학하고 있으며 2005년 2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외국인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이듬해 몽골교육부로부터도 인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본교는 국내 유일의 재외몽골학교로서 전국각지에서 학생들이 입학하다보니 2005년 남녀 기숙사도 마련하게 되었다.

(2) 재한몽골학교 신축의 필요성
본교를 통해 몽골 이주아동들이 교육권을 보장받고 있으나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하고 주어진 공간이 협소하여 더 이상 입학하고자하는 아동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고등과정이 개설되지 않아 졸업 후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들이 있어 보다 나은 환경과 부족한 공간의 해결을 위해 신축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본교는 몽골노동자 자녀들의 교육과 복지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2006년 국회한몽친선협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 청소년위원회로부터 청소년푸른성장대상을 수상 하였으며, 학교 설립자인 유해근 이사장은 2007년 몽골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친선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개교 이래 지금까지 몽골대통령 영부인을 비롯한 울란바타르시장, 울란바타르시의장, 외무부 장관, 대법관 등 몽골 지도층 인사들이 한국에 오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민간외교의 첨병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이주아동의 교육권 보장 및 민간외교 기관으로서 몽골학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2008년 12월 시의회의결을 통해 몽골학교 부지예산을 편성하였다. 이에 지난 5년여 행정절차와 과정을 모두 마쳤고 2013년 10월 4일 건축허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건축의 몫은 본교에 있기에 뜻있는 기업과 개인의 후원과 동참이 절실한 형편이다.

(3) 재한몽골학교의 건축개요
1) 건축허가 과정
0 2008.12.11: 서울시 예산결산위원회 학교부지매입 예산 편성
0 2010.01.28: 서울시 도시계획실시 계획인가
0 2010.11.10: 서울시로 소유권 등기 완료
0 2013.10.04: 건축허가 및 산지전용허가
2) 대지위치: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401-17번지
3) 대지면적: 3,093.00m² (937.27평)
4) 건물연면적: 2,940m² (890.91평)
5) 사업시행자: 서울특별시(학교부지 임대), 사단법인 나섬공동체(건축)
6) 공사기간: 2013년 12월 ~2014년 8월
7) 학생수용: 정원 300명(초등 180명, 중등 60명, 고등 60명)
8) 층별개요: 2,940m² (890.91평)
0 B1: 강당, 주방, 식당, 전기실 909.07m² (275.48평)
0 F1: 교무실, 도서실, 음악실, 행정실, 이사장실 649.59m² (196.85평)
0 F2: 교실6개, 과학실 690.67m² (209.29평)
0 F3: 교실6개, 컴퓨터실 690.67m²(209.29평)

9) 건축 예산: 총 40억원
0 토목: 273,109,976
0 건축: 1,556,307,240
0 조경, 기계설비, 전기설비, 부대비용, 설계비 및 감리비, 비품 및 기자재, 부가세 등
0 합 계: 4,000,000,000
0 총건축비 : 40억원, 현재 모금액 : 14억원, 향후 모금 목표금액 : 26억원이다.
(4) 재한몽골학교의 중요성

1) 사회적 의미

국내의 다른 외국인학교는 자국민보호를 위해 자국에서 설립, 운영하고 있지만 몽골학교의 경우 한국인이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국내 외국인학교 중 유일한 이주노동자 자녀학교이다. 기존 외국인학교는 자국의 지원 및 고액의 수업료를 받고 있어 운영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몽골학교는 학생 대부분 근로자의 자녀로 생활이 어려워 월 10만원의 수업료를 받고 있을 뿐이다.

현재는 몽골 정부로부터의 본교 지원이 미미하지만 몽골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최근 수년간 연 평균 두 자리 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어 언젠가는 본교에 대한 지원도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몽골 지도층 인사들이 한국에 오면 꼭 방문하는 곳이 본교가 될 만큼 몽골 측에선 매우 중요한 학교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개인 교회 기업 등의 후원이 절실하다.

몽골국이 현재는 세계적 빈곤국이나 세계10대 자원부국에 들만큼 자원보유량이 많고 국토면적 또한 남한의 17배에 달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어 가능성이 많은 나라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내의 몽골아동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은 거시적으로 볼 때 우리 국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국가이미지를 제고하고 국내 기업의 확장 발전을 위한 초석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교는 향후 우리 국가와 사회에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임을 자부한다.

2) 선교적 의미
본교는 몽골선교와 세계선교의 징검다리가 되게 한다. 한국은 전세계에 2만 5천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강국이다. 그러한 시점에 재한몽골학교는 몽골선교와 세계선교의 지렛대요 모판이 될 수 있는 학교다. 본교를 통하여 몽골 학생들은 기독교 교육을 바탕으로 몽골교육은 물론 세계화 교육을 받아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된다. 본교에서 배출된 아이들은 몽골뿐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의 통로로서 큰 역할을 감당할 것임에 틀림없다.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몽골인 자녀들을 통한 선교에 관심을 갖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선교적 의미에 대한 사례를 많이 갖고 있다. 본교는 한국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며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우리 곁의 몽골 아동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교육 받고 신앙인으로서 잘 자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겨자씨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지만 결국 큰 나무가 되어 새와 짐승이 깃들이듯이 국내의 몽골아이들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지만 겨자씨의 비밀이 이 아이들 속에 숨겨져 있다. 앞으로 이 작은 아이들을 통해 몽골과 한국이 이어질 뿐아니라 몽골과 세계선교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재한 몽골 울란바타르 문화진흥원}
(1) 설립목적 : 한국 몽골 양국간의 상호문화교류(학술, 출판, 교육 및 문화행사)를 통한 몽골문화 소개 및 양국 우호관계 증진 및 사회문화 발전에 기여한다.
(2) 연혁
2001년 6월 4일 - 서울시와 몽골 울란바타르시의 지원 아래 개원
2001년 10월 30일 - 외교통상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 (제 393호)
2002년 12월 30일 - 공익성 기부금 대상단체 지정
2003년 3월 18일 -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
2002년 4월 ~ 2009년 - 몽골 울란바타르시 교육문화담당 공무원 파견 근무.
(3) 대표자 : 이사장 임은빈 목사
(4) 회원수 : 2,509명(2011년 1월 현재)
(5) 조 직 : 이사회 / 사무국 / 몽골지부(몽골 울란바타르시 소재, 지부장 허성조)
(6) 주요활동
1) 재한몽골인들을 위한 몽골 설날 ‘차강사르’행사.
2) 몽골 문화전시회 및 몽골 여성의 날 행사 후원.
3) 몽골 울란바타르시 방문(7일) 및 몽골 외무부장관, 교육과학부장관 예방
4) Hi Seoul Festival 지구촌한마당 축제 참가
5) 몽골 ‘나담축제’ 행사 개최.
6) ‘몽골과 함께 하는 청소년 무지개 봉사단’ 운영
7) 몽골문화한마당 개최.
8) 재한몽골학교 기념행사 후원 .
9) Nasom Festival(다문화가정 & 외국인근로자 문화축제) 개최
10) 몽골어학당 운영
11) 문화원 및 몽골 문화, 전통, 예술, 스포츠, 관광, 나담축제 등 언론 홍보

[나섬 다문화학교]
다문화 가정(국제결혼가정, 외국인근로자가정)을 위한 대안학교로서 그들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6년 9월에 문을 연 나섬 다문화학교는 현재 한국어 수준별로 기초, 초급, 중급의 3개반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컴퓨터, 한국문화 체험 및 상담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고 통합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나아가 본교 수강생들에게 출신국의 언어와 문화를 소개하는 다문화이해교육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보다 활기찬 한국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1) 한국어 배우기 : 한국어 읽기, 쓰기, 기본회화 및 노래로 배우는 한국어.

2) 한국문화이해 및 상담 : 한국문화 소개, 생활정보 제공,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상담실시.
3) 예절교육 : 한복 입는 방법 알기, 인사 및 절하는 방법 알기 등의 생활예절 익히기.
4) IT교육 : 한글타자연습을 통한 한국어 교육, 인터넷을 통한 생활정보 찾기.
5) 한국문화체험활동 : 유적지 방문, 전통 음식 만들기, 예절교육.
6) 직업교육 : 직업교육을 통한 자기개발 및 취업, 다문화이해교육 강사로 활동.
7) 멘토링 : 언어소통이 되는 자원봉사자와의 멘토링 활동을 통해 한국 생활에 꼭 필요한 활동들을 함께해 나가며 어려움들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지원.
동대문은 세계선교의 현장

[뉴라이프 동대문선교회]
국내 외국인 선교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나섬공동체(대표:유해근)가 한국을 찾아온 많은 외국인들의 선교를 위한 뉴라이프 동대문선교회를 창립했다.
 
뉴라이프동대문선교회는 은퇴 후 새로운 비전으로 선교적 삶을 살고자 하는 한국교회 평신도들이 땅끝에서 한국을 찾아온 많은 외국인들의 중심지역인 동대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자 모인 선교회다.
 
유해근목사는 "지구촌이 이웃이 된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사용하셔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많아지게 되었고, 그 중에도 동대문시장을 중심으로 러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일 평균 6~7천여 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모이는 국제적 중심상업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며 "새로운 삶의 비젼은 품은 한국 교회 평신도 들과 함께 동대문을 찾는 외국인들의 선교 통로 역할을 더 효율적으로 감당키 위해 선교회를 조직하게 됐다"고 창립 취지를 밝혔다.
 
또한, 유 목사는 "이제 동대문은 세계 선교의 현장"이라고 강조하고 "앞으로 동대문에 선교 거점을 세워 회원들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차원의 선교를 진행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섬공동체는 지난해부터 은퇴한 평신도들이 복음을 위해 남은 생을 의미있게 살 수 있도록 뉴라이프미션 비전스쿨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진행된 두차례 비전스쿨에는 22명의 평신도들이 수료했으며, 이들은 이날 창립한 뉴라이프동대문선교회의 주축 회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뉴라이프미션은 오는 3월 7일 3기에 참여할 교인들을 모집하고 있다. 3기 비전스쿨은 3월 7일부터 5월 9일까지 매주 목요일 진행되며 △한국교회의 미래와 뉴라이프미션의 역할 △선교 현장 이야기 △선교와 건강 △몽골 선교와 우리의 미래 △다문화선교 △한국교회 선교 현황과 미래전망 등의 내용이 강의된다. 과정을 마친 후에는 필리핀으로 단기 비전트립을 가게 된다.

목록 | 윗글 | 아래글 수정 | 삭제
윗   글: [이서울포스트사설]경제위축, 행정 파행 극복 차원, 문책 대상 장관 후임 부터 조속히 내정해야
아래글: [이서울포스트사설]새로운 국가재난처 국민적 안전 염원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관리자모드 | 제휴안내 |광고문의 |Contact
서울 강남구 도곡2동 467-24 우성캐릭터 199빌딩 2406호
TEL: 02) 579-5656   FAX: 02) 579-7575
E-Mail : jaemokah@paran.com
Copyright (c) GlobalKorea 2007. All rights reserved.